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논란과 고전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current affairs


* 문제가 된 칼럼과 그와 관련되어 이어진 글


한겨레 - 정명훈, <토목공사식 성과주의>

프레시안의 기사 - 서울시, 정명훈에 연간 20억…상상초월 특권 대우
 
프레시안의 칼럼 - 음악인 정명훈,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

미디어오늘 - 정명훈은 왜 MB 취임식에 '환희의 송가'를 지휘했을까

미디어오늘 - 정명훈 연봉, 많은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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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가 가장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되는 반론 - @leclair_7 님의 <김상수씨의 칼럼에 대해> 
 
한겨레에 올라온 김상수씨의 글을 반박하는 칼럼 - ‘토목공사식’은 반대하지만 정명훈은 다르다 / 류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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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부터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서는 한겨레 및 기타 진보 언론에 실린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칼럼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되어 정리되는듯 하면 하나씩 새롭게 글이 튀어나오는데 (미디어오늘의 두번째 칼럼은 오늘 올라온 것이다.) 문제가 되고있는 김상수씨가 쓴 칼럼의 내용에 대해서는 위에 링크를 걸어둔 leclair_7 님의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 칼럼들은 그 내용이 원색적, 노골적, 악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환희의 송가를 지휘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부분은 뚜렷이 그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저열하다.)

 비록 정명훈 지휘자의 연봉을 매개로 이번 논란이 진행되고 있지만 (저 칼럼의 의도와 별개로) 문제의 핵심은 세금을 가지고 "소수"를 위한 예술에 "과도한" 지원을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있다고 본다. (당연하게도 저 "소수"와 "과도한"이라는 부분이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본 글들 중에서는 조승우의 뮤지컬, 배용준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를 예로 들어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대우가 결코 과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승우나 배용준의 출연료는 시장에 의해 결정된 것이며 그들에게 지불되는 돈은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단순히 대우가 과한 것인가 아닌가 만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솔직히 어디에 가서 클래식을 즐긴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정명훈 지휘자의 연봉에 대한 이번 논란이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닌 고전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그에 지원되는 적지않은 예산 등 보다 큰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은 가끔 논란이 되어 불거져나오는 "예술의 전당 대중가수 대관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는 대부분 당사자들의 오해와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그들이 굳이 비좁은 예술의 전당에서까지 공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예술의 전당은 대중음악가수의 대관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미 조용필, 적우 등이 공연한 바 있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우리 사회에 고전음악/순수예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이번 정명훈 지휘자의 연봉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이와 같은 논란은 다시 발생할 수 있으며 고전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잘못된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세금을 사용하는 일이기에 보다 논의가 생산적으로 바뀌어서 계속되었으면 한다.


 안타깝게도 고전음악은 쉽지 않다. 그리고 즐기게 되기까지 어느정도의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금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많은 곡들이 당시에는 특권층이 아닌 대중을 위한 곡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의 대중음악 중에서도 많은 곡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 앞으로 고전으로 불리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고전음악의 특별함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누적되고 여러 결의 의미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지금 고전이라 불리우고 있는 우리의/서양의 대중가요 역시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상황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거나 어느정도의 학습이 필요하다. (비슷하게 영화 <물랑루즈>는 쓰인 원곡을 안다면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모르는 사람이 그 곡이 쓰인 장면에서 같은 쾌감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지만 고전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전음악은 현대음악의 원형이자 철학적 의미와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무척이나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전음악이라고 하여 특별한 것은 없으며 오히려 너무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문제라는 사람들도 있다. 또 부유한 사람들도 있지만 클래식을 듣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특권층이나 강남3구의 부자와 거리가 멀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취미보다 저렴하다.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서울시향 연주회의 C석 티켓 값은 1만원이다.) 이렇듯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대중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닌 기업과 지자체의 후원에 의해 운영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전음악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특별함이 대중에게 거리감과 반감을 준다면 저렇게 운영되는 방식은 그 반감을 부채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중의 선택에서 외면받은 그들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렇다'이다. 대중에게서 외면받고 있는 다른 여느 분야(국악/판소리/기타 문화재)들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의 차원에서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며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 이런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마땅히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보전'인가 '육성'인가.", "서울시향에 지원되는 예산은 과연 과다한 것인가.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해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또 그 선택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왜 우리의 국악/사학/문화재 등 마땅히 보전이 필요하고 육성되어야 하는 분야에 그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인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이 부분에 대한 합의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내 개인의 생각은 이렇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보전'을 넘어서 '육성'이 필요한 까닭은, 그리고 지원을 통해 '일정 이상의 수준'과 부담없는 '저렴한 비용'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기회가 없어서, 혹은 재미가 없어서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진정 소수만의 문화로 남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가 과연 예산만큼 잘 하고 있는지는 한번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외려 이런 영역에서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은 지원에 익숙해져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이다. 문제삼아야 하는 부분은 이런 경우 아닐까. 더불어 고전음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서로 대화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맞건 아니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건, 어떤 내용으로 결론이 나건 우리에게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생각의 간극을 좁히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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