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논란이 되는 모 아이돌의 사건과 그 사태가 진행됨에 따라 보여지는 반응을 보며 아주 무섭고 살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서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열띤 반응의 이유와 분노를 촉발시키는 포인트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명료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이번 사건에 민족주의적인 기재가 분명 작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분노를 촉발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분노가 표출될 수 있는 수단이자 그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하기 위한 일종의 낙인찍기로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한국 국적의 다른 아이돌 가수가 친구와 이와 유사한 말을 주고받은 것이 공개되었다고 한다면 비슷한 논란과 제재가 결코 없을 것이라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해석하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나에게는 아이돌에게 도덕적인 진정성까지 요구하는 위선적인 도덕주의가 그 근저에 있다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부분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이나 사회를 움직이는 요소 중 하나가 변해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엘리아스는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라는 책에서 어느 기득권 집단이 다른 집단을 아웃사이더로 규정짓고 그들을 억압함으로 권력을 확인하고 유지하게 되는 이유가 "두려움", "위기의식" 등에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한국사회가 유난히 자기 집단(민족, 지역, 학교 등)의 유대를 강조하고 다른 집단에게 배타적이며, 신분상승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계층간의 공공연한 무시와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데에는 이런 "위기의식"이 조장되었고, 만연하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기득권자의 전형적인 무기인 집단주의, 민족주의적 기재와 아웃사이더로의 낙인찍기라는 방식이 사용되었음에도) 위기의식이나 위협받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사실 이 부분은 애초에 촉발원인이 집단/계층간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움직였던 것은, 이런 분노와 증오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던 중 오늘 어느 블로그의 아수라장이 된 국립현충원이라는 포스팅을 보았다. 아하 그렇구나. 더 이상 한국사회는 위기의식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구나. 헌데 무엇이 저들을 저런 지독한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게 하였나.
과거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등은 모두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자 반대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산층과 그 몰락이 유난스럽게 강조되는 것도, 뜨거운 교육열과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것도 여기서 삐끗하면, 상대에게 뒤지면 바로 추락이라는 위기의식에서 기인한다. "기득권"과 "위기의식"은 지금까지의 한국사회가 보이는 여러 기현상들을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개념으로 보여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위기의식"이라는 기재로 설명될 수 있는 집단은 3040대, 늦어도 50대까지인듯 하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 제외되는, 위기의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날카로운 증오를 드러내는 집단이 젊은세대와 노인세대라는 것이다.
오늘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절망감, 해소되지 못하는 불만에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집단의 증오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노인세대의 과격보수단체가 보이는 행동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지금까지 일생에 걸쳐 형성되어온 정체성에 충실하다. 자신의 삶이 불만스러운, 지금의 우리 사회가 못마땅한 이유가 이제껏 자신들이 적대시하던 세력에 있다고 생각하고 증오를 쏟아내는 것이다. 반면 젊은세대의 증오는 다소 복잡하다. 그들은 계층이 점점 고정되어 가고있다는 것을 느낀다. 문은 좁아지고 경쟁자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지독한 경쟁을 통과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파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적절한 "적"을 알지 못한다. 과거에는 사회가 적을 알려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분노는 갈곳을 찾지 못하다 대상을 발견하게 되면 그쪽으로 급속히 표출된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위기의식으로 조장되던 경쟁이 한계에 다다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굳어진 정체성에 의해 분노하는 노인세대의 증오는 해결할 길이 없어도, 젊은세대의 그것은 비록 어렵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증오의 이유는 정체성이 아닌 사회가 주는 절망감에 있다. 만일 그들에게 분노의 표적 대신 가야할 깃발이 주어진다면, 상처만이 남는 숨막히는 경쟁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할 것이 아니라 잠시의 여유를 주고 각자의 그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면 여전히 삶은 어려울지라도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