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제왕적 사법부"라는 표현을 처음 본 것은 <미국헌법과 민주주의>라는 책의 최장집 교수가 쓴 서문(요약본 링크)에서였다.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에 컬쳐쇼크와 비슷한 정도의 놀라움을 느꼈었는데 그것은 그전까지는 이런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적 관점에서 사법부(그러니까 헌법에 대한 해석권이 있는 우리의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크게 느끼지만 "제왕적 사법부"의 출현을 우려하기에 이와같은 결정에 수긍한다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국민이지 헌재의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저 "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글들을 볼 때마다 저런 우려의 생각에 대체적으로 수긍하면서도 언제나 약간 석연찮은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법체계가 대륙법의 그것을 계수하였기에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관점으로만 그 역할과 결정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다소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우려는 (충분할 정도로 알지 못하지만 내가 제대로 보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매디슨적 삼권분립의 배경에서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해 우위를 가지는, 소수의 법전문가가 민주주의의 내용과 결정에 간섭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는데에, 정치적 결단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이 사법부에게로 돌아가는 상황의 출현에 근거한다. 민주주의가 헌법(보다 정밀히 말하자면 헌법의 해석)에 의해 제한을 받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서도 그렇지만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법체계가 영미의 정치체계를 도입한 것과는 달리 대륙(유럽)의 그것을 계수하였기에 매디슨적 삼권분립에서 요구하는 (혹은 반대로 그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나오는) 사법부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해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법제, 헌법재판소의 모델은 독일의 그것이다. 헌법에 대한 우리의 해석방법 역시 미국의 역사보다는 독일의 역사, 그들이 겪었던 정치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독일은 나치의 출현과 세계대전의 경험이 있다. 즉 국민 대다수의 결정으로 헌법이 파괴되는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때문에 독일의 법체계가 민주주의 (국민의 결정) 보다 헌법을 다소 우위에 두는, 헌법에 의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해석을 예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우리의 사법부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우리의 통치구조가 매디슨적 권력분립을 택하였기에 미국의 그것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부가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확실히 유럽식의 그것에 더 가깝다. 우리의 사법부(헌재)는 유럽식으로 사고하지만 미국식 민주주의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취하는 적극-소극의 자세를 논하기에 앞서, 그리고 그들의 결정을 비판하기에 앞서, 이런 차이가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극-소극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이들이 내리는 결정은 법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논리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by Daimon | 2009/11/05 15:46 | fragmentary thought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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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ocio at 2009/11/05 16:13
예리한 지적입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의 사법부가 기능하는 사례들을 찾아보고 더 고민을 해보아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Daimon at 2009/11/06 03:04
저도 socio님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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